NamJune Paik 백남준
평론 광대한 불모지인가? 빠르게 변화하는 대지이다!

뉴욕타임즈

그 누구도 백남준만큼 대담한 창의력으로 텔레비젼의 역량을 평가한 사람은 없다.

백남준은 한국 태생의 전자 마법사로서, 진보적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독일에서 시작하였다. 끝없는 에너지와 창조에 대한 강박관념은 텔레비젼을 백남준의 독창적인 창조물로 재탄생시켰다. 방송의 진부함을 떨쳐내고 전기선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범세계적 이미지를 위한 사물의 발견부터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위한 “TV bra" 의 제작까지, 광고를 해체하여 기하학적으로 만들고 극적인 시각환경을 만들기까지, 백남준은 자신만의 특징을 비디오 작품에 심으면서 보편적인 사람들이 꿈꾸지 못하는 것을 실현시켰다. 모니터에 자석을 붙여 전기 신호를 왜곡했던 1960년대 초의 첫 번째 시도부터 최근의 멀티채널 글로벌 프로젝트까지, 백남준은 통찰력을 갖고 창의성과 유머감각을 통해 비디오의 프로세스와 가능성을 변모시켜왔다.

이제 68세의 백남준은 정점을 지나왔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1982년 이후 미국에서의 첫 번째 회고전인 구겐하임 미술관의 “백남준의 세계(The World of Nam June Paik)”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구겐하임의 영화와 미디어예술의 수석 큐레이터 John G. Hanhardt와 미디어예술의 어시스트 큐레이터인 Jon Ippolito에 의해 준비된 “백남준의 세계"는 1960년대 이후의 주요 비디오 작품들과 레이저 빔으로 시각적인 힘을 보여주는 최근의 작업을 포함하고 있다. 레이저 예술의 설치 전문가 노만 발라드(Norman Ballard)의 협력으로 완성된 전시회의 주요 작품 “Modulation in Sync(2000)”는 관객들을 빛과 소리의 세계로 형성된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이끌어 간다. 작품의 주요 요소중에는 두 개의 레이저 프로젝션이 매체로서 정의할 수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광경이 포함된다. 또 다른 작품인 “Jacob's Ladder(2000)"는 번쩍이는 레이져의 빛이 돔의 꼭대기에서 로툰다 바닥까지, 7층으로 이뤄진 공간을 Z형으로 폭포가 떨어지듯이 내려온다. 또 다른 작품인 ”Sweet and Subline(2000)"은 구겐하임의 돔에 연속적으로 채색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낸다.

레이져 작품들은 각기 다른 요소들이 로툰다를 점유하고 있는데, 천장을 향하고 있는 100대의 모니터들이 빠르게 멀티채널의 이미지들을 영화 스크린 크기의 6개의 모니터에 반복시킨다. 모니터들은 로툰다에서 시작되는 나선모양의 경사로 벽에 설치되어있으며, 어떤 지점에서 내려보아도 모니터들은 물결이 휘몰아치는 연못을 상기시키게 되며, 경사로 위에 이중으로 설치된 스크린에는 영상이미지들이 영화스크린 규모로 확대되어 보여진다. - 영상이미지들은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딕 카베트(Dick Cavette), 머스 커닝햄(Merce Cummingham)과 일본 록밴드들의 이미지들도 포함된다.

High Gallery로 이름지어진 장소는 여지껏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의 전당으로 자리잡았지만, 주로 정적인 현대미술(비디오 아트에 비해서)을 취급하였기 때문에 무한의 공간에서 추상적인 서체의 일종처럼 겹치면서 움직이는 3개의 “레이저 조각”인 “Three Elements"를 보여주면서 약간 어두워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눈이 움찔할 정도의 놀라운 광경은 전통적인 이젤화가 칸딘스키같은 360도 회전을 보여준다.

경사로를 따라 그 다음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6-70년대 백남준을 보여주는 12개 이상의 작품들로서, 일부는 미술관의 경사로 곡선에 맞추기 위해 형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진부한 농담같은 “Candle TV(1975)"는 빈 모니터 상자에 외로이 초가 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더 야심에 찬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면 ”TV Garden(1975)"의 최근판처럼 무성하게 잎파리를 뻗은 화분들이 경사로의 가장자리에 늘어뜨려져 있다.

30개의 비디오 모니터가 식물들 사이에 반쯤 가려진 채로 위로 향하고 있던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놓여져 있다. 모니터의 이미지들은 모두 “Global Groove"(1973)이라는 작품에 담겨있던 팝 퍼포먼스의 빠른 변화의 혼합과 다른 미술가들의 영화와 영상 이미지 그리고 변용된 광고와 주요 시청대의 텔레비젼 방송물과 조화롭게 편집되어있다. 이 작품은 아마도 백남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작품일 것이다. 초기의 촛대 작품을 더 한층 발전시킨 것이 “One Candle(Candle Production)"(1988)로서 여기서는 외로운 초 한 대가 비디오로 상영되고, 이미지가 3개의 기둥 사이의 벽면 위에서 몇 대의 모니터에 의해 채색된 그림자들이 춤을 추는 듯 깜빡거리도록 교묘히 조작된다. 백남준이 동양인의 피를 잇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Mongolian Tent"(1993)는 모래를 뿌린 바닥이 있는 실제 크기의 몽고족 천막집에서 3개의 부처상이 벽과 텐트 기둥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1990년 작 “Beuys Projection"을 보면서 놓여져 있다. 이 작품은 요셉 보이스가 퍼포먼스를 하고 백남준이 이를 필름에 담은 것이다.

실상과 가상을 혼합시키는 백남준의 기술이 담겨있는 “Video Fish"(1975)는 52개의 탱크가 긴 둑을 쌓고, 그 안에 혼합 이미지를 보여주는 모니터 화면 앞으로 살아있는 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비디오 화면에는 다른 고기들도 보이고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춤추는 모습과 생령(生靈)의 모습도 나타난다. 경사로의 맨 꼭대기인 Tower 복도는 모두 백남준의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사진들과 오브제들, 테이프(비디오와 오디오) 상영과 관람자들을 끌어들이게 만드는 상호적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사진들은 무작위와 우연으로 편곡을 하여 음악과 퍼포먼스, 시각 예술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인습타파적인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와의 초기 관계를 보여준다. 백남준의 소리와 침묵을 혼합한 오디오와 비디오 작품과 많은 비전통적인 음악적 요소를 첨가한 변형 피아노 작품인 “Klavier Integral"(1958-63)은 케이지의 개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관습적인 문화적인 경건심을 맹렬히 비난하기 위해서 게릴라 병법을 사용한 국제적인 예술가 그룹이었던 플럭서스의 초기 맴버로서 백남준은 정렬적인 활동을 하였다. 1964년의 한 사진은 플럭서스의 창립자인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가 백남준의 “One for Violin Solo"(1962)를 위해 바이올린을 부셔버리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Town Hall에서의 ”Mixed Media"(1968)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백남준은 허리까지 벌거벗고 즉흥적으로 선반을 머리로 부딪혔다.

Tower 복도의 한 부분은 백남준의 당당한 협력자인 무어만(Ms. Moorman)에게 헌사 되었다. 무어만은 클래식 첼로 연주가이며 전위 예술가로서 활동하다가 1991년에 사망하였다. 백남준과 같이 일하면서 그녀는 백남준의 편곡을 흥미있게 따라갔고 뉴욕 영화제작소인 씨네마티크(Cin?math?que)에서 “Opera Sextronique"(1967)에 출연하여 위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아 체포되기도 하였다. 2년 후에 그녀는 용맹스럽게 자신이 첼로를 켜고 있는 이미지를 담은 백남준의 작은 텔레비젼 한 쌍을 가슴에 부착시킨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Bra"(1969)를 입기도 했다.

또한 복도 밖에는 백남준의 초기 오디오를 들을 수 있고 방송을 위한 작품들과 한 채널의 비디오 테이프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방들도 있다. 복도에는 더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이중에는 Paik-Abe 비디오 신디사이저 원본(1969-72)이 있다. 백남준과 일본인 기술자인 수야 아베(Shuya Abe)와의 협력이 상업용 텔레비젼과 차별된 특색 있는 실제와 비디오 이미지들을 생산케 한 것이다. 이는 백남준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조 하였다.

우리 삶 속에서의 텔레비젼의 이데올로기와 구조, 그리고 영향에 관한 이해력을 가지고 이를 예술적인 유머와 열정적인 방법으로 다룬 백남준은 과히 예술세계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일 것이다. 전통이 짧으면서도 완강하게 반항하는 매체를 다루는 그는 예술의 “주요 흐름”이라는 놀이에 있어서 “누가 먼저냐?”라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기술과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는 자로서, 그리고 엔터테이너(entertainer)로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는 이미 얻어진 문화적 국보라는 명칭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2000년 2월 1일 뉴욕타임즈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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