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섭 展
2006. 8. 24 - 9. 2
Day Dream

한지의 질감과 색감을 그대로 이용해 독특한 재질감이 살아있는 한지회화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함섭의 개인전. <Day Dream>시리즈의 미발표 신작 위주로 20 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함섭의 <Day Dream> 시리즈는 국내 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홍콩 등에서도 한국적 미감과 서구적 형식미학을 절묘하게 접목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지를 이용한 실험적 작업이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Day Dream>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들은 수제 한지와 닥종이, 그리고 고서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재료로 제작되었고, 닥이라는 재료의 본래적 색채인 황토색의 바탕위에 천연염료로 염색된 오방색 기조의 색지들이 추상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추상회화이다. 한국적 재료와 토속적 색채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지극히 서구적인 형식미학. 이 두 가지 이질적인 속성들 사이의 절묘한 조화가 함섭 작품의 아우라이며, 다른 한지 작업들과 차별화되는 요건이다.

작품의 제작과정 또한 완성된 작품 못지않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염색된 순수한지, 한지 원료인 닥나무 껍질, 그리고 닥을 원료로 직조된 천 따위의 재료를 일단 섬유질이 잘 분리되도록 물에 푹 담군 후 이를 찢거나 두드리고 짓이겨서 작품의 틀 위에 겹겹이 교직하여 쌓아 기본적인 바탕을 완성한다. 이때 큰 솔이나 방망이로 두들겨가며 붙여 종이의 접착을 강화하고 더불어 울퉁불퉁한 표면질감을 만들어낸다. 그 위에 닥껍질의 두꺼운 섬유질이나 닥 직물을 이용하여 콜라주처럼 붙여 조형적 형태를 만든다. 이때 사용되는 색지는 모두 천연재료로 염색된 것으로 전통색채인 오방색(청, 적, 황, 흑, 백)을 기저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물에 젖고 두드리는 과정을 지나면서 색지는 닥종이 본래의 황토빛 바탕과 어우러져 완성된 작품은 마치 오랜 시간을 통해 빛이 바랜 탱화를 보는 듯한 시간성과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온다.

작가는 분명 화면에 어떤 형상과 조형에 대한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시작하긴 하지만, 작업 결과는 대부분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처럼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성과 우발의 결과를 포함한다. 작가가 신들린 듯 또는 춤추는 듯 너울너울 종이를 다루는 모습은 붓과 페인트 통을 휘두르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떠올리게 한다. 화면의 자율성, 우연의 효과에 매료되었던 폴록처럼 작가는 이런 한지회화의 특성에 큰 매력을 느낀다. 페인팅과는 달리 처음부터 의도적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붙이고 두드리고 또다시 붙이고 두드리는 가운데 형태도 그리고 재질감조차도 한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조율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형태와 색채 뿐 아니라 우둘투둘 불규칙하고 거친 표면의 촉각성 또한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런 표면효과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표면을 단단한 솔로 힘차게 두드려 완성된 것이다. 한 비평가는 이 표면효과를 ‘품위 있는 한 노인의 주름진 피부를 보는 듯한’ 인상에 비유한다. 세련되게 잘 다듬어진 매끈함보다는 자연스럽고 향토적인 정서를 자아내는 이런 특징이 함섭의 작품을 한국적이며 동시에 국제적인 감성의 작품으로 인정받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