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展
2006. 12. 08 (Fri) - 12. 17 (Sun)

전시개요

그녀의 화면 속에는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애매한 비정형의 형상과 얼룩들이 부유한다.
마치 흐르는 듯한 화면 안에 들어있는 대나무와 뼈, 선과 점, 그리고 구름과 같은 형상들은 작품 안을 떠돌다가 정착한 듯 보인다. 황토색, 황갈색조의 바탕에 앉아있는 형상들은 고유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화면 내의 다른 오브제와 조화를 이루며 소통하고 있다. 이런 비구상적인 형상들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서 풍경처럼 혹은 정물처럼 보인다. 작가에게 갈색조의 바탕은 우리내 흙, 땅을 대변하는 세상이고 어눌하고 무작위한 형상들은 생의 의미를 내포한 오브제이다. 그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대나무 형상이다. 작가는 대나무와 같이 텅 빈 마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조화롭게 사는 것이 세상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대나무의 몸체에 인간의 형상을 겹쳐놓거나 악기 등의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그녀에게 생의 의미란 종교적인 깨달음을 통한 정신적 체험과 세상을 살면서 우연적인 만남, 그 연결 되는 만남을 소중하게 안고 살아가고자 함이다.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한 후에 미국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수학하였다. 외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존재와 인간의 나약함 그로 인해 기댈 수 있었던 종교 등 그녀 자신이 고스란히 작품에 이입되었다. 그 후 자아를 찾고자 하는 자각과 함께 귀국하면서, 우연히 “옻”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오랜 세월동안 보존성이 뛰어난 옻의 영구성에 매료된 이정연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집에 있던 장롱이나 마룻 바닥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고, 그 깊은 색감에서 가장 한국적이며 토속적인 느낌을 받았다. 또한 한국적인 것을 지키고 알리고자 하는 작가에게 옻은 절묘하게 맞아 들어왔다.

이번 근작에서 그녀는 옻칠을 먹은 삼베 위에 새롭게 자개를 입힌다. 영문으로 “Mother of Pearl”의 의미인 자개는 “고통을 승화하면서 영롱한 빛을 내는 생의 의미”를 지닌다.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종교적인 주제와 정신세계를 은유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자개는 끊임없이 자연재료를 추구하는 작가의 물질적 특성과 함께 영원하면서도 조용한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면에서 이정연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의 새로운 메타포가 된다.

작가는 바탕인 삼베에 몇 차례 옻칠을 한 다음 산, 대나무, 목관악기, 뼈, 따위를 연상케 하는 간략한 부호 및 기호 체계의 이미지들을 앉힌다. 또한 한지 위에 삼베를 덮고 위에 이미지들을 그려 넣는다. 이 때 먹, 흙, 숯가루 따위의 자연 재료를 이용하면서 인조물감과는 다른 색채를 얻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옻과 자연재료를 직접 그림으로써 재료와 공간, 그리고 작가의 몸이 함께 이루어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손가락으로 바르는 이미지는 투박하고 거칠고, 번들거림이나 광택이 없이 흙벽처럼 질박하고 건조한 질감을 가져 보다 더 한국적인 정감으로 다가오며, 꾸밈을 덜 낸 순수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