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tany Fanning
브리트니 패닝
PDF
평론

브리타니 패닝(Brittany Fanning, B.1991)의 그림에는 스키장이나 설산이 보이는 배경으로 한 여성이 와인을 들고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포착된다. 겨울의 계절감이 돋보이는 주인공의 옷과 테이블 위에 술과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이국적이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주인공 뒤로 펼쳐진 설산 앞에는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오두막집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재난 현장이 재현되어 있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전경과 혼란스러운 후경의 대조되는 장면은 관람객이 다시 그림을 천천히 읽어 나가도록 만든다. 전경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얼굴은 선글라스나 모자로 가려져 있거나 캔버스에서 아예 벗어나 있다. 또 다른 작품의 주인공은 등을 돌리고 있어 앞모습을 확인하기 어렵고, 얼굴이 있더라도 그 형태는 뭉개져 있다. 이렇게 모든 주인공의 표정이 감춰진 일관된 특징은 얼굴을 통한 직접적인 감정 전달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표정이 나타나는 얼굴보다도 몸짓이다. 각각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재난 현장과 무관하게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거나 관람자를 등진 채로 와인잔을 쥐고 있다. 유리잔은 급박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깨지기 쉬운 물체이고 잔에 담긴 음료는 흔들리다 바로 흐르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펼쳐질 다음 장면은 테이블에 와인잔을 놓고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와인을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갈 것 같다. 이러한 전개는 등장인물이 와인잔을 든 순간과 이미 와인을 마시고 있거나, 에서 눈밭에 엎드린 채로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응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비워진 옆자리와 화면 앞으로 와인잔을 내미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관람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뒷모습으로 그려진 인물은 관람자의 시선을 주인공이 향한 시선과 같은 방향으로 끌어당겨, 관람자가 작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이입하여 등장인물의 경험을 대리 체험하도록 돕는다. 이에 더해, 푸른빛의 어스름이 깔린 겨울 풍경은 재난이 불러일으킨 긴장감을 걷어내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흔들림 없는 주인공과 정물 요소의 견고한 상태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게 작가가 그림에 심어 놓은 반전의 묘미는 사실 예기치 못한 코로나로 팬데믹 시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이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제 그림 속에서 인물들은 불이 나거나 토네이도가 오는 데도 태연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와인 한 잔을 즐기고 있는데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개의치 않고 평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참 해 보이더라고요. 마치 전례 없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들 같죠.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침착해야 할 테니까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위태롭고 혼란한 순간은 재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조금은 엉뚱한 브리타니의 작품은 우리에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카오스의 순간에 특유의 위트와 함께 우리를 혼돈에서 침착하게 구출해 줄 것이다.

 

| 임소희 (BHAK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