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섭의 패러독스
황호섭의 그림은 일종의 패러독스이다. 그리기 위해서 지우고, 지우기 위해 그리는 행위를 이어나간다. 목적이 전혀 다른 정반대의 행동이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이미지와 공간이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시각 질서를 만들 수 있을지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에 있어, 시작과 끝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시작과 끝이 뫼비우스처럼 연결되어 시작은끝이 되고, 끝은 시작이된다. 시작의 의미와 끝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위에 치열하게 남겨진 것은 반복된 운동 에너지의 흔적들이다. 어느 지점에서든 시작할 수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멈출 수 있었기에 가능한 통제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발견되지만, 그렇다고해서 임계점을 넘어선 폭주는 없다. 그의 그림 전체를 관통하는 잔잔한 물결처럼 따뜻한 감성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민의 결과이다.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은 시간과 공간이란 테두리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의 상상을 한계지우는 제한적인 인식의 울타리로 작동하기 쉽다. 그러나 앞서 언급 했듯이,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작과 끝이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반복된 지우기 과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시작과 출발을 인지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지워 버린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관객은 무한한공간과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지워나간 흔적 뒤로 희미하게 남겨진 아크릴 물감의 작은 입자들이 작가의 철학적 고민과 상상을 유추하게 하는 유일한 단서이다. 어쩌면 그의 붓이 멈춘지점은 과거의 흔적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앞둔 현재의 운동에너지, 작가의 창작 의지일지 모른다.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황호섭의 수행적 행동이 이미지가 아닌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그 목표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화면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 보이지만, 심미적으로는 물감의 입자 사이의 공간을 창조해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탄생한 공간을 통해 더 깊은 정신적인 영역을 감각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화면을 비워서공간을 창조하기란 쉽지만, 화면을 작은 입자들로 채워나가면서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다. 작가는 이 불가능한 모순어법에 그 만의 시각적 해석을 더해 새로운 차원의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해체된 무한의 시공간, 현실과 초현실의 중간지대,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각의 충돌이 남긴 잔상이 어떤 시지각적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집요하게 탐구한다. 이는 이성적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궁금증이며, 동시에 관객의 감각기관이 무엇을 인지하고 느낄 수 있을지 실험하는 일종의 철학적 질문이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등 그가 캔버스에 남긴 색의 입자들은 이질성과 동질성의 경계에 미묘한 중력장을 만들어 낸다. 물감의 입자들이 단순히 ‘서로 끌어 당기는’ 대신 ‘그 주변의 시공간의 성질을 바꾸며’ 작품 속의 시간과 공간의 깊이와 폭을 입체적으로 확장시킨다. 또한 각각의 색은 스스로를 해체하여 ‘존재’를 지우고 ‘인상’만을 남기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 결과 가장 근원적인 기본 색상을 쓰고 있지만 각각의 색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이질적인 주변의 색감을 그대로 흡수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포용성을 보여준다. 하나의 색 안에서 여러 수 많은 색을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실제 현장에서 직접 봐야 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인상이 바뀌고, 옆에 어떤 색과 풍경이 펼쳐지는가에 따라 작품 속 공간의 아우라가 달라진다. 하나의작품만 단독으로 보았을때와 다른 색상의 작품을 옆에 놓고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르게 읽힌다. 이는 색을 통해 공간을 채우고 공간을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빈 캔버스에 숨겨져 있던 공간을찾아내고 발굴하고 거기에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해서 작품을 완성하기에 가능한 결과이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분포된 물감의 흐름과 거기에 남겨진 입자의 균질함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고도의 집중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액션페인팅의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이 안된다. 또한 새로운 표현 형식과 소재를 활용해 형식미학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물성과 질감 등 표피적인 미학 언어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미술사와 인간사, 프랑스와 한국, 도시와 자연, 물과 산을 오가며 작가 스스로 작은 디테일까지 집중해서 얻어진 감성이 발휘하는 특별함이다. 놀랍도록 섬세한 물감의 입자가 어디에 놓여야하는지, 얼마만큼 지워져야 하는지 디테일을 중요시하고, 장엄한 우주를 연상하게 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풍경에서 무엇이 더 빠져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더 더해져야 할지 과감하게 판단한다. 이전 작업에 비해 물감의 물질적인 존재감은 얇아지고 희미해 졌지만, 그것이 담아낼 수 있는 정신적인 확장성은 더 진해지고 강해진 최근 작품이다. 화폭의 표면 위로 물감이 올라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환영에 집착하는 대신, 화폭 아래 깊은 곳에 숨겨졌던,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시공간을 화면위로 이끌어 내는 황호섭의 이번 시도는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만질수 있는 공간의 깊이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의 깊이가 다름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황호섭이 지워서 그려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글│ 이대형, 대표, 에이치존 (Daehyng Lee, Director, Hz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