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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rling with the Wind: 춤추는 바람
함섭 회고전
Exhibition Period
2025.4.10 - 5.24
Exhibition Introduction

함섭 회고전《춤추는 바람 Whirling with the Wind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이는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춤추는 바람 Whirling with the Wind》 전시 작가 함섭(1942-2024)은 자신과 예술의 근원과 본질을 한국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서 찾고자 한 작가이다한민족의 삶에 내재된 문화 정신을 탐구한 함섭의 회화는 전통과 현대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정서를 구현한 추상회화로 평가받는다함섭의 작품은 단순한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40여 년에 걸친 거듭된 실험과 사유를 응축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 신명 Enthusiasm:


함섭의 작품 양식은 3시기로 구분되는데활동 초기에 제작된 연작 <신명 Enthusiasm>(1984-1995)은 그의 작품 세계의 서막을 연다작품 제목처럼 <신명>은 어떤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한 작품이다겹겹이 쌓인 한지 위로 자유분방하게 엉켜 있는 획들은 펄럭이는 날갯짓 같기도진동하는 선율 같기도역동적인 춤사위 같기도 하다이처럼 활발한 동세를 통하여 다양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신명>은 서구의 뜨거운 추상과 겹쳐 보인다내면의 감정을 강조한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전통적인 추상표현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함섭의 작품에서 그 소재와 표현 방식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 한지를 물에 적셔서 찢고두드리고짓이겨 화면을 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던지고두드리고짖고짓이기는 일은 내 예술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전통 타악 연주를 하듯이독특한 나만의 방법을 도출하려 한 것이다우리나라 전통무용그리고 북꽹과리장구징을 두드리는 사물놀이와 굿판의 원색 깃발도 내 작품과 일맥상통한다”

 

<신명>은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발달한 ‘굿 놀이’, ‘수호신’, ‘사물놀이’ 와 같은 종교적 의식과 민속 축제에서 행해지던 춤과 음악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신명은 한국의 뿌리 깊은 미의식 중 하나로감정의 분출과 씻김을 통하여 활력과 생명력을 생성하는 정서이다열정기쁨을 상징하며 우리의 생활과 예술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운을 전해온 것이다함섭은 이러한 신명 나는 풍류 한 마당을 회화로 옮겨왔다이때 함섭은 표현의 도구로서 붓과 물감을 사용하지 않는다그는 닥종이 바탕을 무대로 삼고 악기를 연주하듯 한지를 던지고 긁고 두들기는 창작 기법을 고안하여 행위로서의 그리기를 시도한다이러한 시도는 함섭의 창작 행위가 곧 내면에 잠재된 신명을 깨우는 몸짓이자 의식이란 사실을 알려준다함섭은 이처럼 과거의 삶 속에 숨쉬고 있는 특별한 감각과 정서를 작품으로 소환시킴으로써과거와 현재를 잇고동양과 서양의 미의식을 아우르는 추상회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2. 한낮의 꿈 Day Dream:


<신명이후 시기에 제작된 <한낮의 꿈 Day Dream>(1995-2010) 연작에서도 한국의 전통 요소는 작품의 소재와 영감으로 작용한다그러나 그 표현 양식은 <신명>에서처럼 겉으로 표현되기보다 화면 안으로 응집된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이러한 변화는 <신명시기에는 신체를 사용한 행위성이 개입된 기법 자체가 작품을 특징지었다면, <한낮의 꿈시기에는 한지가 지닌 독특한 물성을 활용한 창작 기법이 작품 형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색이 나부끼는 서낭당의 분위기궁전과 절의 원색 문양,

색동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하늘을 나는 그네 타는 모습떡판의 오묘한 문양들에서 모티프를 찾았다.”

 

“종이와 나 자신이 캔버스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스며서 한지의 내면을 소유하고 싶다.”

 

“한지는 단순한 물질로서의 매체라 하기보다 정서로 순화된 그 무엇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인의 숨결이눈물과 땀이 베이고 얼룩진저 내밀한 시간의 흔적을 쫓는 일은

그림 그리는 일임과 동시에 한국인의 정서 구현으로 소급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한지는 우리 문화 속에서 책이나 그림생활용품과 건축 등 다양한 생활 환경의 일부로서 존재해 왔다함섭은 한지가 지닌 여러 특성 중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으로부터 한국적 정신을 추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신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한지는 겉면이 매끄러운 양지에 비해 물의 흡수성이 뛰어나 채색이 매우 쉽게 스며들고한지 위에 다른 한지를 붙였을 때 서로 일체감을 이루는 특징이 있다함섭은 이러한 한지의 성질을 활용하여 천연염료로 염색한 한지와 닥나무 껍질을 물에 적셔 서로 겹치거나 마치 흙을 반죽하듯이 한지를 주무르며 화면에 한지를 붙이기를 반복한다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낮의 꿈>은 뜨거우면서도 차분한 기운과깊으면서도 투명한 색감과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화면을 구현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재료의 본래 모습이나 그 근본을 완전히 달라지게 하여 작품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 과정 속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과 서과거와 현재가 혼합되어 한국 전통의 맛이 배어나는 현대회화가 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함섭의 회화가 단순히 재료를 활용한 양식적인 통합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함섭은 우리의 문화와 여기에 접합된 정서를 자신만의 회화로 재탄생시키는 데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말하자면함섭에게 한지는 단순히 바탕 재료가 아니라 감각과 정신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물질인 것이다바로 이러한 맥락에서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함섭의 작품은 전통과 동시대적 미감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한지에 잠재된 한국의 미를 통해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결합한 함섭의 작품은이처럼 과거의 문화와 정신을 현대의 언어로 승화시킨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고향 Ones’ Hometown:


이상에서 살펴봤듯이함섭의 예술에는 계속해서 실재적 세계와 작가의 관념적 세계가 만남을 이룬다예술과 삶 중에서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함섭은 예술에 삶과 문화를 끌어들이며예술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하였다이를 위해 함섭은 화가로서 인생의 오랜 시간을 보낸 서울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2010년 자신이 태어난 춘천으로 귀향하여 이후 12년 동안 왕성한 작업을 펼쳐 보인다.

 

“내 작업에서 일련의 색과 면과 선들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고향의 풍요이다.

이렇게 내 삶과 작품은 한결같이 한국적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연작이 <고향 One’s Hometown>(2010-2022)이다일반적으로 고향은 중첩적인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고향은 그리움을 품은 물리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 장소와 시간 속에서 생성된 사유와 감정의 총합을 의미한다이처럼 함섭에게도 고향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그에게 고향은 물리적인 장소이면서도개인과 우리 민족의 역사적 원형으로서의 의미가 담긴 사유와 감정의 실체이다따라서 함섭에게 귀향은 과거의 시간과 장소를 향한 단순한 이동을 넘어 사유의 이동을 반드시 동반한다. <고향>은 이러한 사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이전 시기의 작품에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작품에 등장했다면, <고향연작은 춘천의 잔잔한 자연 풍광과 선비의 방을 중심으로 작가의 일상과 정서를 담담하게 보여준다이처럼, <고향은 함섭 작품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을 보여주며개인의 정체성과 예술관을 표상하는 작품인 것이다.

 

한편함섭에게 귀향은 자유의 상태로서의 의미가 있다그가 춘천으로 돌아간 상황은 기존 주류의 생활과 화단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변방으로 밀어 넣는 과정이었다이러한 행로는 특정 사조나 담론에 구속되지 않고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고자 했던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그에게 귀향은 억압적이고 관성에 치우친 현실과 시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 있다해방을 향한 귀향이를 통해서 함섭은 비로소 자신을 속박하던 일상과 마음에서 탈피하여 더 이상 얽매임이 없는 자유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었다바로 이러한 내면의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담은 작품 <고향>은 함섭과 우리 역사의 궤적을 담은 새로운 산물이자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와 생명력을 잃지 않는 진정한 예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섭 회고전 《춤추는 바람 Whirling with the Wind》은 어떤 시대나 지역의 얽매임 없이모두가 공유하고 감동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 함섭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이다이러한 함섭의 사상 깊숙이에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풍류(風流)’ 사상이 깔려있다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체성의 원형으로 불리기도 하는 풍류 사상은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멋이 있는 것음악을 아는 것예술에 대한 조예를 지닌 것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함섭의 작품에는 이러한 자유함과 예술의 정신이 담긴 풍류가 행위로서생활로서그림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시명 ‘춤추는 바람’은 풍류의 바람 풍()자와 흐를 류()자를 풀이한 것으로보이진 않지만 우리와 항시 뒤섞여 공존하며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바람의 속성을 지향하는 함섭의 예술을 은유한다또한 이번 전시는 그의 예술에 깊이 내재된 풍류 정서를 느끼며 우리 자신의 감각과 삶 또한 새로이 경험하길 제안한다.

 

 

   l 임소희 (BHAK 큐레이터)

Ham Sup Retrospective: Whirling with the Wind


To understand who we are, we must first understand our past—its history, its culture. Art is no exception. In Whirling with the Wind, BHAK presents a retrospective of Ham Sup (1942–2024), a Korean artist who explored the roots of self and art through the cultural spirit of Korea. His works, often described as abstract paintings, go beyond mere formal abstraction—they are the result of decades of experimentation and contemplation. Ham’s art gracefully traverses time and geography, blending tradition and modernity, East and West.

 

1. Enthusiasm (1984–1995)


Ham Sup’s artistic journey begins with the Enthusiasm series. As the title suggests, these works express a kind of fervent, ecstatic energy. On layered sheets of Hanji, the artist’s dynamic strokes unfurl like fluttering wings, vibrating lines, or exuberant dance movements. This visual rhythm recalls the bold energy of Western abstract expressionism, yet Ham’s approach is deeply rooted in Korean tradition.

 

Soaking Hanji in water, I tear it, beat it, knead it. The act of throwing, striking, crushing—it’s more than a method. It’s a performance, like playing traditional Korean percussion. The vibrant colors of gut rituals and Samulnori are closely connected to my work.”

 

Inspired by Korea’s indigenous rites and folk celebrations—gut shamanic rituals, guardian spirits, and percussion ensembles—Enthusiasm captures a uniquely Korean emotional rhythm called Shinmyeong (Enthusiasm): a release of emotion that generates vitality and joy. Ham did not paint in the traditional sense. Rather than brush and pigment, he threw, scratched, and pressed Hanji onto a canvas, invoking a painting style that is also a performative gesture—an awakening of the inner spirit through the body.

 

2. Day Dream (1995–2010)


In the Day Dream series, Ham turns inward. While tradition remains his inspiration, it becomes more internalized. If Enthusiasm was defined by the energy of action, Day Dream draws from the quiet materiality of Hanji itself. The artist began to explore the medium more deeply—its absorption of color, its flexibility, and its quiet strength.

 

I drew inspiration from colorfully fluttering flags at village shrines, vivid palace patterns, children in hanbok on a swing, and the subtle motifs on rice cake boards.”

 

I wanted to meet Hanji on the canvas without revealing myself. I wanted to absorb into the paper and possess its inner world.”

 

Hanji is not just a material—it is emotion made visible. It holds the breath, tears, and sweat of the Korean people, the traces of intimate time.”

 

Through repeated processes of soaking, layering, and kneading Hanji dyed with natural pigments, Ham created surfaces that are at once serene and intense, translucent yet deep. The result is a visual language where the material and spirit of Korea are inseparable. Day Dream distills the Korean soul—quietly, profoundly, and with grace.

 

3. One’s Hometown (2010–2022)


Ham Sup’s artistic and personal journey comes full circle in One’s Hometown, a series created after he returned to his birthplace, Chuncheon. After decades in Seoul’s art scene, he chose to distance himself from the mainstream, seeking creative freedom and solitude.

 

The colors, shapes, and lines in my work are the richness of my hometown made visible. My life and art are grounded in the Korean spirit.”

 

For Ham, hometown was not only a place but a space of memory and emotion. His return was not just physical—it was a philosophical return to origin. Unlike his earlier works filled with cultural motifs, these paintings gently reflect everyday life and the quiet nature surrounding his studio. They are meditative, embodying both a beginning and an end—a personal declaration of identity and purpose.

 

His return also symbolized liberation. By moving away from established systems and art world conventions, Ham freed himself to pursue an art unbound by trends or ideology. One’s Hometown captures this inner freedom—a serene, grounded joy that transcends time and place.

 

Whirling with the Wind celebrates Ham Sup’s lifelong quest for a spiritual and artistic truth that transcends time, geography, and convention. At the heart of his work lies the Korean concept of pungnyu—an aesthetic philosophy grounded in nature, beauty, music, and artistic refinement. For Ham, art was not merely a practice, but a way of living with grace and freedom.

 

The exhibition title, Whirling with the Wind, is a poetic interpretation of the term pungnyu, suggesting an invisible yet ever-present force that stirs our senses and elevates our spirit. Through this exhibition, we invite you to experience Ham Sup’s worldwhere art, life, and tradition flow together like wind, awakening something deeply human within us all.

 

 

Text by Sohee Lim (Curator, BH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