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I
지히
평론
고독한 인간 소외와 비뚤어진 사회 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은 조형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첫 개인전을 여는 신예 작가 지히는 판넬 위에 파스텔로 단순한 이미지의 드로잉들을 그려냅니다. 얼핏 보면 그저 쓱쓱, 어린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낙서인 듯 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고도의 함축적인 기호들로 가득 찬 알레고리인 듯도 합니다. 작가의 작업에서는 흡사 키스 해링의 그것처럼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게 그려내는 묘한 힘이 느껴지는데, 작가는 대화와 교류가 단절되어가는 각박한 현대 사회 현실을 꼬집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염원합니다.

작가는 오일 파스텔로 점, 점선, 선과 입술, 동그라미, 하트, 눈 등 상징적 기호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반복하는데 작가의 머뭇거림없는 선묘를 보고있노라면 ‘현대적 삶의 화가’를 부르짖었던 보들레르의 낭만적 댄디즘이 떠오릅니다. <같은 생각>, <마음곱하기>, <우리끼리> 등의 작업은 기호와 텍스트를 통해 유추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각각의 네러티브들을 함유하는데, 이렇듯 작가의 작업은 가벼움과 통찰,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사각의 판넬 위에 팝아트적 재료와 일상, 낭만적 모더니티라는 아이러니한 조합을 이뤄냅니다. 지히 작가는 이번 첫 번째 개인전 《LOVE ESSAY》에서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오늘날 인류의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부재 그리고 희망을 다룬 약 20여 점의 작업들을 선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히 작가의 작업이 생생한 색채, 함축적 기호와 텍스트라는 작가만의 필터를 통해 개인의 체험에서부터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의 고찰로 확장되며, 나아가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향후 보다 진화되는 작업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윤승연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