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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욕 Baekyok
LEE Jangwook 이장욱
Exhibition Period
2022.8.19 - 10.1
Exhibition Introduction

이장욱 개인전 : 백욕 BAEKYOK

 

이장욱은 일본 교토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언어를 바탕으로 한 아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작가다.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 중 언어를 신중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몸소 체험하면서, 이장욱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가는 말들, 그 말소리 너머에는 우리의 속내, 즉 본심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본심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꿈이나 일상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꾸준히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작품화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그간 작가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반추하는 행동에서 출발하며, 특별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설화의 대나무 숲에서 영감을 받아 착안한 요소를 작품 곳곳에 가미하였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된 수로 작품 <세디먼트 영 Sediment 0>은 이장욱의 대표작 <세디먼트 Sediment> 연작 중 최신작이다. 이 작품은 신라 때에 포석정(鮑石亭)에서 이루어지던 문인들의 풍류 곡수유상(曲水流觴)을 재해석한 것이다. 곡수유상은 과거 문인들이 삼짇날 수로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수로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차례로 시를 지어 읊고 그사이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일종의 놀이 문화를 일컫는다. 문인들이 수로에 술잔을 띄웠던 것처럼, 이장욱은 자신의 수로에 배를 띄우고, 수로 주변에서 시를 읊던 사람들의 목소리 대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스피커를 배에 장착하였다. 배에서 나오는 소리는 수로를 맴돌며 관람자의 발길을 끌어당기지만, 청각을 곤두세워도 그 소리가 명확하게 감지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의문의 소리는 그릇 형태로 잘린 대나무 속에 글자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전시장 벽면을 둘러싸고 있다. 벽면에 설치된 총 64개의 오브제는 전시 제목이기도 한 작품 <백욕>이다. 이 작품에 새겨진 글자 이미지는 우리가 편하게 읽고 쓰는 자음모음이나 알파벳의 형태가 아니다. 이는 특정 단어에서 연상되는 생각과 느낌이 조합되어 탄생한 일종의 이미지로서, 규칙이 있는 문자가 아니라 암호의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백욕>의 의미를 현실의 대상에서 찾게 되면 설득력을 잃게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꿈, 사랑이라는 글자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장욱은 <백욕>에 새겨진 글자 이미지가 담고 있는 각각의 고유한 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방편으로 <백욕-도감>을 제시한다. 액자 형식의 <백욕-도감>에는 <백욕>의 글자 이미지가 수집되어 있고 이미지 아래에는 각각의 풀이가 적혀 있다. 그 풀이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 속 글자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거나 의미 전달을 위한 실용적인 기능을 하기보다는 추상과 감동의 상태를 불러일으켜 우리의 의식 세계를 일깨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장욱은 감각적이고, 개념적이고, 즉흥적인 언어를 예술가로서 발견하고, 엿듣고, 이를 잘 보관하고 포장하여 다시 전달하는 일을 한다. 예술가 자신과 예술품이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를 담는 그릇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술적 의지를 전시명 백욕은 담고 있다. 이장욱은 백욕의 에 숫자 ‘100’과 순수한 ’, 그리고 백욕의 에 욕망의 의미를 부여하여, 전시를 통해모두의 마음’, 그리고 순수한 욕망이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대나무 다리로 떠도는 소리를 떠받치고 있는 <세디먼트 영>과 글자들을 담고 있는 대나무 그릇의 <백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대나무 숲처럼, 누군가가 털어놓은 소리를 저장하는 공간이기도, 타인의 소리를 듣는 귀일 수도, 마음의 소리를 나누는 자리일 수도 있겠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뱉는 언어에 잠재된 순수한 욕망을 긍정하며, 이를 함께 끄집어내고 헤아려보는 기회를 가져 보기 바란다.

 

글│임소희 (BHAK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