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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 원스
Han Young Wook 한영욱
Exhibition Period
2023.8.24 - 9.27
Exhibition Introduction

한영욱의 인물화는 초근접의 거리에서 촬영한 인물 사진 같다. 사람보다 몇 배에 달하는 스케일로 재현된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배경이나 복식은 생략되고 얼굴의 이목구비가 부각된 점이다. 특히 눈동자, 피부 주름, 솜털과 눈썹, 머리카락과 같이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인체의 지극히 사적인 신체의 부위가 손으로 만진 것처럼 매우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촉각적 감각이 부각된 한영욱의 그림은 현실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생동감을 전하는데, 이러한 특징은 작품의 표현 기법과 연관이 있다. 한영욱은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패널을 뾰족한 도구(니들)로 긁어서 스케치하고, 이어서 채색을 한 뒤, 다시 패널을 긁는 과정을 반복하여 인물을 그린다. 한영욱의 인물은 선의 굵기와 동세, 작품 표면에 패인 선을 비추는 빛의 강도,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는 표면 질감의 총합으로 완성된다.


선을 주된 조형 언어로 사용한 인물화는 매우 사실적이고 견고한 형태를 유지한다. 또한 동시에 알루미늄 패널에 긁힌 흔적으로서의 선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면서 인물의 형태에 미세한 왜곡을 동반한다. 이에 따라 한영욱의 인물은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지만 마치 그림이 감상자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긴장감을 일으키고, 감상자는 표정을 짓는 사람의 실물을 보는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눈과 몸으로 그림을 더듬게 유도하는 한영욱의 그림은 한참을 작품에서 서성대고 머무르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감각적 쾌감을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지닌 감각의 에너지는 감상자의 감정과 정신의 에너지로 전이되는 심리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화면을 가득 채운 아이의 얼굴은 순수한 기쁨을 불러내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은 어떤 이상향을 상상하게끔 하며,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은 오랜 세파를 겪어낸 이면의 평온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게끔 한다. 


이처럼 한영욱의 인물화는 얼굴의 외형을 통해 내면의 감정과 심리를 읽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수많은 외부 대상 중에서 한영욱은 왜 사람의 얼굴을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 한영욱은 인간이 탄생 이후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목적지가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해 강한 분노와 저항심을 가졌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세상으로의 태어남, 마찬가지로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예정된 죽음의 현실에 한영욱은 커다란 분노와 고통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삶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원한 감정으로 자신을 불행하게 놔둘 수 없었던 한영욱은 삶을 긍정하는 수단으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영욱은 사람의 얼굴을 한 번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그림으로 불러낸다. 이때 한영욱은 각각의 인물을 자신이 가장 염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재현한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아이, 여인, 노인은 한영욱이 현실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얼굴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미지를 상상 속에 떠올려서 조합한 것이다. 


한없이 순수한 아이의 얼굴은 삶이 지닌 고통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젊은 여인의 얼굴은 짧지만 가장 아름다운 생의 순간을, 원숙한 노인의 얼굴은 모든 상황을 초월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처럼, 한영욱이 그리고자 한 것은 인간의 외양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정신의 표현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현실을 극복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나타낸다. 


한영욱은 자신이 오랫동안 그린 수많은 인물을 니체가 제시한 철학 개념이자 인간상인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사회 가치에 우리가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삶에서 자신의 가치와 삶을 창조하여 세상을 살아가자는 것을 뜻한다. 불가피하게 내던져진 삶의 한복판에서, 이를 뛰어넘는 초인으로 바로 서자는 니체의 선언을, 한영욱은 자신의 작품으로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맹목적인 생존이나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지상 위의 삶의 가치를 창조하고 긍정하는 한영욱의 예술은, 우리의 삶과 그 속에 깃든 예술의 가치를 충분히 발견하도록 만들 것이다.


임소희 (BHAK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