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N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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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Details

White Noise

Aug 20, 2026 - Sep 23, 2026

Nam June Paik 백남준, Kim Ryu 김류

Introduction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기술을 발명하고 발전시키며 끊임없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기술 문명이 가장 고도화된 시대를 살아간다. 20세기 전자매체가 등장했던 백남준의 시대도, 인공지능이 일상 곳곳에 자리한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보를 매개하는 전자매체와 인공지능은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고 처리하는 기능을 넘어, 인간의 감각과 사고에 개입하면서 서로 관계를 맺는 소통의 매체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백남준–김류: 백색소음》은 이러한 시대 속에서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과 관계를 맺는 매체로 바라본 백남준과 김류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두 작가의 작업을 경유하며, 기술이 소통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우리의 감각과 사고, 판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전시장 한 켠에는 〈TV 첼로〉를 연상시키는 첼로 오브제와 누드 드로잉, 영상이 함께 놓여 있다. 첼로 오브제는 백남준과 샬럿 무어만이 함께했던 퍼포먼스를, 누드 드로잉은 전자매체와 결합한 인간의 신체를 암시한다. 또한 영상은 <TV 첼로>의 브라운관에 실제로 송출되었던 영상이다. 각각은 인간의 신체와 기술 매체가 하나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경험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처럼 백남준은 기술과 인간이 대립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고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이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언제나 이상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갈 것이라 낙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텔레비전이 일상의 친숙한 매체인 동시에, 특정한 관점으로 선택되고 편집된 이미지를 전달하며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매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TV 부처〉와 같은 작품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은 카메라, 모니터, 불상이 서로를 비추는 폐쇄된 순환 구조 속에서 실시간으로 부처가 TV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송출한다. 이는 단순히 부처가 TV를 보는 작품이 아니라 TV 속에서 비춰지고 있는 부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과 그 대상을 구성하는 매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전달과 수신을 오가는 순환 구조를 매개로 새롭게 펼쳐지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과를 생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인간의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로 되돌려준다. 김류는 바로 이러한 순환 구조 속에서 인간이 기술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는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술과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존하며,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관찰한다.

〈환신(幻信)〉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관객이 다가서면 화면 속 눈은 마치 관객을 인식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오는 듯 반응한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실제 추적이 아니라 미리 설정된 반복이다. 작품은 기술이 인간을 이해하고 응답한다는 믿음과 실제 작동 방식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우리가 기술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고 신뢰하는지를 되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신작 〈익명의 몽타주〉에서 더욱 확장된다. 작품 제목에서 ‘익명’은 인공지능이 축적하고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정보를, ‘몽타주’는 여러 정보를 이어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을 의미하며, 오늘날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암시한다.

작품의 구조물을 따라 연결된 회화와 조각, 생성 이미지와 3D 출력물은 하나의 형상을 구현하는 듯하면서도 끝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어긋난 결과물을 보여준다. 각각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일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성한 것이나, 서로를 참조하거나 논의하지 않은 각자의 결과물이다. 또한 구조물 전면에 설치된 웹캠은 관객을 인식하여 새로운 생성 이미지를 화면에 띄우고, 후면 모니터에는 생성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는 동일한 장소와 조건에서 합성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결과로 수렴되지 않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축적되고 변형된 결과물을 보여준다.

정보와 결과를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이 기술에 점점 더 위임되는 시대, 작품은 수많은 결과물 가운데 무엇이 더 정확하고 옳은 결과물인가를 따지기 보다,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기서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인간을 일방적으로 보조하거나 인간이 기술의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존재가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백남준과 김류가 바라보는 인간과 기술이 아름답게 공생하는 세계이지 않을까.

전시 제목인 ‘백색소음’은 이러한 세계관을 바라보는 하나의 감각적 태도를 함축한다. 존 케이지는 ‘4분 33초’를 통해 연주되는 음악이 아닌, 연주를 둘러싼 공간의 소리와 관객의 움직임, 우연히 발생하는 잡음까지 하나의 음악적 경험으로 전환했다. 이는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듣고 바라보게 하는 태도였다. 오늘날 기술 역시 우리의 일상과 사고 속에 깊이 스며들어 더 이상 특별한 대상이 아닌 익숙한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익숙한 것은 오히려 쉽게 의식되지 않는다.

《백남준–김류: 백색소음》은 바로 이러한 익숙한 기술의 존재를 다시 감각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자리이다. 백남준이 기술을 인간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가능성으로 바라보았다면, 김류는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된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기술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판단, 책임을 되짚어본다. 전시는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맹신하거나 경계하는 이분법을 넘어,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인간과 기술이 함께 사고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새로운 관계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길 제안한다.